1. 유전에 대한 이해
유전 인자가 병에 걸릴 위험의 정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증거는 최근에서야 밝혀졌다. 아이가 부모나 친척을 닮고 가족이 서로 비슷한 신체적 행동적 특성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가족들이 공유하는 생물학적 유전 요인이 가계에 유전되는 특정 질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부분의 신체적, 행동적 특성은 유전자가 결정한다. 유전자의 구조 및 기능과 유전 방식에 대한 설명은 다른 단원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생활 습관 인자와 마찬가지로 유전 인자 또한 질병의 원인이 된다. 몇 가지 희귀질환의 경우 결함 유전자가 직접적인 발병 원인이 되지만, 많은 경우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 때문에 특정 질병에 걸리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가족 병력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다 보면 가족 내에 특히 많이 발병하는 질병을 찾아낼 수도 있다.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특정 질병에 대한 유전적 성향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 한 쌍의 남녀 가운데 어느 한쪽이 결함 유전자를 물려받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유전자 검사는 그 적용 범위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유전학자들은 아이가 결함 유전자를 물려받을 가능성을 예측하고, 건강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조언해 준다. 검사를 통해 유전 질환의 증상을 초기에 치료하고 완화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2. 당신과 유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는 수정되는 순간 수정란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모든 과정을 결정한다. 체세포 하나하나에는 23쌍의 염색체에 배열되어 있는 9만 쌍가량의 유전자가 있다. 한 쌍의 염색체는 각각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하나씩 물려받게 되며, 형제자매마다 유전자 조합이 약간씩 다르다. 각 유전자는 세포가 생화학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며, 이 과정에서 단백질을 형성한다. 또한 세포의 성장과 복제도 조정하며, 배아가 아기, 어린이, 그리고 어른 순으로 성장하도록 조정한다. 유전자는 평생 세포의 기능을 관리하며 죽거나 손상된 세포를 고치거나 교체하는 일을 담당한다. 일부 유전자들은 가족의 신체적 특징과 여타 특성을 결정한다. 가족의 공통된 특성 중에는 사소한 것이 많으며 건강과는 무관하나, 비정상적으로 큰 신장 또는 작은 신장, 비만 같은 특성은 특정한 질병에 걸릴 위험도와도 관련이 있다. 혈우병과 낭포성 섬유증은 단일 유전자 혹은 유전자 한 쌍의 결함이나 돌연변이가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이런 질병은 일정한 유전 경향을 따르므로 해당 유전자를 지닌 가족들이 후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질병의 위험도에 대한 정보를 미리 얻어 낼 수 있다. 유전자가 직접 원인이 되는 유전적 질환보다 더 흔한 경우는 유전자가 다른 요인과 함께 작용하여 특정한 질병이 발생하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관상동맥 질환은 유전적 요인 외에 고지방 식사, 흡연, 운동 부족 등의 생활 습관 요인도 중요하다. 천식과 같이 유전적 소인을 가진 질병의 경우 환경오염과 같은 환경 오인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경우 유전 요인과 환경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므로 태어난 아기가 성인이 되어 질환이 발생할 위험 정도를 예측하기란 어렵다.
3. 가족의 병력
가족의 병력을 살펴봄으로써 가계에 유전되는 질환이 무엇인지를 알아낼 수 있다. 이러한 질환은 유전에 의한 것일 수도, 생활 습관 요인에 의한 것일 수도 있으며, 두 가지 모두에 의해 발병할 수도 있다. 의학 가계도를 그려 보면 가족에게 영향을 주었던 질환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며, 질병에 걸릴 위험도를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다. 물론 부모, 형제, 자매에 대한 정보가 가장 중요하지만, 숙부, 고모, 이모, 조부모 등 가능한 여러 세대에 걸쳐 수집된 정보를 이용하면, 보다 완벽한 가계도를 그릴 수 있다. 친척의 생활 습관을 알려 주는 것은 의사가 질병이 생활 습관 때문인지 유전으로 인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데 도움을 준다. 가계도는 의사의 진찰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병원을 처음 방문했을 때, 임신했을 때, 입원했을 때, 그리고 천식과 같은 유전 질병 증상이 있을 때 의사는 가족의 병력을 묻게 된다. 의학 가계도를 살펴보아 특정 질병이 두 명 이상의 가족에게 영향을 주었다면 의사와 상의한다. 질병이 발생할 확률이나 자녀에게 물려 줄 위험 정도 등을 알아보기 위해 유전 상담이 필요할 수도 있다. 80세 이상 산 친척이 많다면 당신도 장수할 확률이 높으며, 특히 건강한 생활 습관을 지니고 있을 경우 그 확률은 더욱 높아진다. 단명한 친척들이 많다면 그 원인을 알아내도록 한다. 가족에게 두 번 이상 나타난 질병은 당신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가족 중 2명 이상이 사산되었거나 아동기에 사망했다면 유전 질환을 의심해 봐야 한다. 60세 이전 심장 질환이나 암으로 사망한 성인이 두 명 이상, 관절염 등의 만성 질환을 앓은 성인이 세 명 이상, 동일한 질환으로 불구가 되거나 사망한 가족이 두 명 이상 있는 경우에도 유전 질환을 의심해 볼 수 있다. 60세 이전에 사망한 경우에도 유전 질환 때문인지 의심해 봐야 한다. 유전 상담사는 질병의 위험도를 평가하고 유전 질환을 일으키는 결함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 결함 유전자가 정상 유전자에 가려져 있는 보유자의 경우에는 증상이 없어도 자녀에게 결함 유전자를 물려줄 수 있다. 유전 상담사는 가계 내에 높은 빈도로 나타나는 질병이 유전으로 인한 것인지 생활 습관으로 인한 것인지를 밝히려고 노력할 것이다. 예를 들어, 가계에 대장·직장암이 유전되는 경우 대장·직장암은 고지방 저섬유질 식사와 관련이 있으므로 가족들의 공통된 식습관이 원인일 수 있으나 유전 요인으로 발병할 소지도 배제할 수는 없다. 가족 병력을 통해 유전질환에 걸릴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면, 유전 상담사는 질병과 관련된 특정 유전자가 알려져 있는지, 그 유전자를 발견해 낼 수 있는 진단적 검사가 있는지 알려줄 것이다. 또한, 유전 상담사는 검사할지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보를 알려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결함 유전자를 물려받은 경우 예외 없이 질환이 발병하는지 또는 다른 예방 조치가 있는지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자신이나 자녀에게 반드시 영향을 미친다는 확신이 없는 질환에 대해 염려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거나, 자녀가 유전 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다 하더라도 출산하기로 마음먹는 예비 부모인 경우나 질병의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는 보유자로 “낙인찍히기”를 꺼리는 사람들의 경우는 유전자 검사를 받지 않기로 결정하기도 한다. 검사 결과에 따라서 조처할 것은 아니지만 결과를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검사 결과는 본인 외에도 결과를 알기를 원하지 않는 다른 가족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인종에 따라서 특정 유전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크므로,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도 각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선별 검사를 권유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예를 들어, 흑인 10명 가운데 1명은 겸상적혈구 빈혈 유전자를 보유한다. 유전 상담사는 유대인에게 대사 장애인 테이-삭스병에 대한 선별 검사를 권한다. 일반인의 경우 300명 가운데 1명만이 이 질병을 일으키는 결함 유전자를 갖고 있으나, 독일, 폴란드, 러시아계 유대인은 30명 가운데 1명이 보유하기 때문이다.